우리 몸과 소리 환경은 어떻게 뒤엉키는가

해금 연주자

소리와 듣기, 소리풍경의 세계를 만나다

지난 4월, 저는 도쿄 전역에 흩어져 있는 실험 음악 베뉴들을 찾아 연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즉흥연주를 주로 하면서 소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덕에, 도쿄라는 지역이 내는 독특한 소리 풍경과 다양한 음색의 악기 소리로 가득할 여행을 상상하며 한참 설레고 있었지요. 그때 노트북 옆에 놓인 토리고에 게이코의 책 『소리의 재발견: 소리 풍경의 사상과 실천』(그물코, 2015)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021년부터 시작된 소리 리서치 과정에서 알게 된 이 책은 제게 소리와 듣기, 특히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소리 풍경) 개념과 사상에 대해 깊은 흥미를 갖게 해 주었습니다. 해마다 정독하며 틈날 때마다 들춰보다 보니 이제는 한 줄만 읽어도 문단 전체가 자연스레 떠오를 지경이었는데요. 저는 문득 저자인 토리고에 게이코 선생님은 실제로 어떤 분일까, 혹시 도쿄에 가는 김에 직접 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녀처럼 소리로 가득 찬 이 세상을 깊이 듣는 삶은 어떠한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에서 주최하는 국제학술대회 〈Audible Futures: Medea, Ecology, and Art〉에서 일본 사운드스케이프 협회장인 코조 히라마츠 선생님이 기조 연설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직감적으로 이곳에 가면 토리고에 선생님의 연락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도 직감을 따라 간 그곳에서 운 좋게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죠. 저는 그간의 연주 활동과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한 관심을 전하며 정중히 인사를 드렸고, 선생님께서는 제 관심에 응하듯 “사운드스케이프는 사상이며, 경험하고 실천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대화의 끝에서 저는 소리와 듣기를 삶으로 실천하고 계신 토리고에 선생님과의 만남을 부탁드렸고, 직감과 운이 교차한 끝에 마침내 선생님과 마주 앉을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삶의 태도이자 철학이 되는 ‘듣기’

2025년 4월 24일, 도쿄역 근처 라운지에서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라운지는 벽 너머로 기차가 오가고 분주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간이었는데요, 그 속에서 우리는 마치 작은 섬처럼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장장 세 시간 동안 영어와 의성어 수준의 일본어를 오가며 소리와 환경, 그리고 듣기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교환했습니다. 그녀는 소리에 집중할 때 눈을 지그시 감곤 했는데, 그 순간 커피잔과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와 공중에서 얽히는 말소리들조차 대화의 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츠쿠츠쿠 매미와 밈밈 매미를 구분하며 소리 풍경에 빠져들었다던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도심 속 사운드스케이프 디자인 경험을 듣는 동안, 저는 마치 책 속 문장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글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한 그녀에게서 오랜 시간 ‘듣기’를 실천하며 쌓아온 태도와 이지(理智), 그것이 켜켜이 쌓여 청각적으로 풍부한 삶, 그녀가 관계 맺어온 소리 환경이 더욱 생생히 전해졌습니다.

이 경험을 장황하게 풀어놓는 이유는, 듣기가 단순한 청각 행위가 아니라 태도이자 삶의 철학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서로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욱 넓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토리고에 선생님과 그녀의 스승인 머레이 셰이퍼의 태도와 철학을 모델 삼아 듣기를 연습하고 세계를 듣는 귀를 길러온 것처럼, 『듣기의 철학: 우리는 무엇을 듣고 듣지 않는가』(곰출판, 2025)는 일곱 명의 서로 다른 실천과 태도, 철학을 가진 ‘듣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꾸준한 실천이 하나의 철학이 되고, 그것이 공동체로 퍼져 나가는 과정은 머레이 셰이퍼가 말한 ‘개인의 청각적 비평력’이 사회로 확장되는 과정과도 닮아 있습니다. 각자의 “나의 듣기는 이랬다”라는 경험과 내밀한 사유가 담긴 이 책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닌 함께 듣기를 위해 이야기를 건넵니다.

우리가 만드는, 우리를 만드는 소리니치

음악학자 정혜윤의 글 ‘소리생태계, 소리니치로 듣다’에서는 ‘니치’ 개념을 통한 소리 환경과 인간의 관계, 즉 소리니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니치(niche)란 원래 생태학에서 생물이 환경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 조건을 의미하는데요. 저자는 이를 인간과 소리 환경의 관계에 적용하여, 사람이 살아가는 물리적·사회적·문화적 환경 속에서 소리 환경이 인간에게 어떤 인지적·정감적 지원을 제공하는지를 탐색합니다. 글의 시작부터 흥미로운 점은, 독자가 본격적으로 글을 ‘듣기’ 전에 비버의 댐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예열의 시간을 갖는 점인데요. 저자는 독자가 주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하며, 자연의 훌륭한 건축가인 비버를 예로 듭니다. 비버는 나무를 갉아 물가로 옮기고, 흙과 돌을 더해 적극적으로 보금자리를 만듭니다. 이렇게 스스로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비버는 새로운 생태 조건과 생존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그 환경은 후대에게도 이어집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삶과도 닮아 있습니다. 인간 역시 도구와 기술을 통해 환경을 변화시키며, 그 속에서 신체적·사회적 변화를 경험합니다. 예를 들어 젖소의 가축화와 우유 소비가 인류의 젖당 내성 변화를 이끌었듯이, 우리는 주변 환경뿐 아니라 삶의 방식, 생존 전략, 문화, 심지어 음식에 의해서도 끊임없이 적응하고 변화합니다. 결국 동물이든 인간이든 환경이든 변화하고 적응하는 순환의 고리 속에 있으며, 서로가 포개어지고 얽히며 또 다른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니치는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환경에서도 구성됩니다. 언어와 기호, 문화적 규준과 실제, 법 체계, 교육 제도, 의복과 같은 사회적 제도, 관습 등은 모두 니치를 구성하는 요소가 됩니다. 체화된 인지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은 뇌뿐 아니라 몸 전체와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데요, 인간 사회에서 니치는 인간의 마음에 부과된 과제를 대신 수행함으로써 부담을 덜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계산하거나 전화번호를 외우거나 복잡한 계산식을 수행할 때 당연하게 도구나 기술의 도움을 받지만, 가끔은 그 당연함 때문에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곤 하지요. 여기서 ‘마음에 부과된 과제를 거들어 대신한다’는 말은, 결국 우리가 환경에 끊임없이 의존하며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줍니다. 이처럼 도구와 기술뿐 아니라 소리 환경 역시 인간의 인지적·정감적 과제를 분담하며 우리의 활동을 조용히 돕고 있습니다.

소리니치와 뒤엉키는 신체

저는 이 글을 통해 해금 연주 경험이 ‘소리니치’로 이어지는 순간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특히 정악처럼 5음 음계의 단순한 선율이 반복되는(그 흐름이 비슷해서 단순하지만 암보 시 헷갈릴 수 있는) 곡을 암보하여 연주할 때, 나의 귀와 몸은 선율이 흐르는 패턴과 주변 음들과의 관계, 방향을 따라가며 다음 음을 예측합니다. 반복적으로 연습을 거듭하면서 근육 기억이라는 것이 결정적으로 암보를 돕고, 이 과정은 암보가 단순히 머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손끝의 감각과 호흡, 현의 떨림을 따라 귀와 몸이 함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죠. 또한 해금의 소리는 연주하는 몸과 함께 사고하고 감정을 나누는 것으로 관계를 맺는 정감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무대 위에서 뿐만 아니라 연습실에서 혼자 연주할 때에도, 소리는 과거를 불러오기도 현재를 살아나게도 하며 음악의 흐름을 매번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냅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리니치’는 소리가 발생하는 순간이자 현재의 체험이며 추상적 개념을 넘어 실제 연주 현장에서 제가 매번 마주하는 구체적인 현실이기도 합니다.

정혜윤의 글은 또한 감상자가 소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조율하는 주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철학자 조엘 크루거가 음악 경험을 ‘지각적 춤’이라고 표현했듯, 우리는 소리와 환경과 몸의 관계를 다양한 몸짓으로 조율합니다. 저자는 유입되는 소리를 조절하기 위해 문을 닫거나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사용하는 것이나 음악적 동조 현상에서 호흡, 맥박, 움직임이 음악과 맞춰지는 과정을 설명하며, 듣기가 몸과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임을 부연합니다. 결국 감상자는 무방비 상태에서 소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제공하는 특정 소리 자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의 신체 상태에 맞춰 조정하며, 정감적으로 규제됨을 이야기합니다.  말하자면 고된 노동을 노동의 리듬에 맞춰 부르는 노동요로 환기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에 ASMR을 찾아 듣거나, 안정이 필요할 때 낮음 음역대의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안정을 취하는 것 모두 소리 환경이 인간의 정감적 상태를 조정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곧 듣기가 곧 삶의 방식이며, 타자와 세계를 받아들이는 태도라는 사실로 이어집니다.

음악가와 소리니치

이렇듯 『듣기의 철학』 중 음악학자 정혜윤의 ‘소리 생태계, 소리니치로 듣다’에서는 동물의 사례에서 출발하여 인간을 둘러싼 소리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니치 구성과 스캐폴딩, 착근된 인지와 정감의 관점에서 폭넓게 탐구합니다. 비버가 댐 안에서, 거미가 거미줄 위에서 자신에게 최적화된 삶을 구축하듯, 인간 역시 소리 환경을 소리니치로 적극적으로 구성하며, 인지적·정감적으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형성된 소리니치는 세대를 걸쳐 전해지며, 인간의 삶은 주변 소리 환경과 긴밀히 얽혀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나하나 쯤이야’라는 태도보다는 ‘나 하나라도 잘 들어야’ 한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리니치는 그러한 태도가 모여 후대의 소리 환경이 더욱 풍요롭게 되며, 환경과 인간이 선순환의 관계로 이어지고 살아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책을 덮고 나면, 내가 지금 발 딛고 있는 공간이 어떤 소리들로 짜여 있으며, 그것이 나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다시금 귀 기울이게 됩니다.

개인의 깊은 듣기가 공동체로, 나아가 사회와 환경으로 뻗어 나가 소리로 관계 맺고 소리의 생태계에 일조하는 것. 이러한 듣기의 태도와 철학이 우리의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음을 깊이 공감하며, 저는 음악가이자 소리를 다루는 퍼포머로서 어떤 ‘소리니치’를 남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공연, 리허설, 워크숍, 앨범 등 형식을 막론하고 다양한 청중과의 만남 속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의 흔적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나 위로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소리니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듣기의 철학』은 인간과 소리, 삶과 관계가 어떻게 내밀하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며, 듣기의 실천적 철학을 독자에게 안내합니다. 음악가뿐 아니라 일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은 소리를 새롭게 경험할 창을 열어줄 것입니다. 덕분에 저 또한 도쿄에서의 연주 여행과 토리고에 선생님과의 만남을 다시금 떠올리며, 수천 마리 귀뚜라미의 울음이 두 귀 사이를 오가는 밤에 이 글을 마칩니다.

글 | 김예지

해금 퍼포머이자 즉흥 연주가, 기획자, 연출가이다. 해금을 매개로 실제 감각과 유기적으로 관계 맺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사운드스케이프와 소리, 듣기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퍼포먼스를 만든다. 최근 작품으로는 《Insects Never Sleep》(2024), 《듣기를 위한 가이드 : Ear duct,us》(2025) 등이 있다.

『듣기의 철학: 우리는 무엇을 듣고, 듣지 않는가』 

“세상은 읽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하는 것이다.”
_자크 아탈리

눈을 감고 귀를 열면 들리는 것들
청취를 통해 사회를 감각하는 청각적 사유의 확장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로서의 ‘소리’에 주목하다

‘소리연구’에서는 모든 소리의 의미가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구성된다’고 믿는다. 음악이나 언어 같이 특수한 소리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가 사회ㆍ문화의 맥락 안에서 “발생하고 소통되며 수용된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다루는 ‘소리’는 단순한 청각 자극이 아닌,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감각으로 정의된다. (…중략) _곰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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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_VIEW 2025.10.16.
『듣기의 철학: 우리는 무엇을 듣고, 듣지 않는가』  서평 특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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