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구원할 이어폰 바깥의 소리풍경

우리는 무엇을 듣고, 듣지 않는가

밤에 깨는 일이 잦습니다. 깨는 시간은 대중없는 편입니다. 설익은 잠이 들었을 때는 자정이 채 되기 전에 깨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잠이 들었다 싶은 날에는 새벽 두 시와 세 시 사이에 눈을 뜨기도 합니다. 잠에서 깨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정적입니다. 까만 밤을 더 까맣게 만드는 정적. 그 고요함이 낯설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다시 잠들려고 애쓰고는 합니다. 아침의 새로운 소리와 훤한 대낮의 소음을 맞이하기 위해 새벽녘의 진공에 가까운 무음을 애써 떨쳐보려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분명 잠들기 전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눈을 떠보니 세찬 비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빗소리가 나를 깨운 건지, 일어나 보니 빗소리가 들렸던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새벽 세 시의 고요를 깨뜨리는 빗소리를 듣자, 이번만큼은 바로 잠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소리도 없기에 더욱 명징하게 들리는 소리를 조금 더 듣고 싶었습니다. 빗소리와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이 시간과 세계 속에 머물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소리 속에 잠겨갈 때, 문득 책상 위에 놓인 『듣기의 철학: 우리는 무엇을 듣고, 듣지 않는가』(곰출판, 2025)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듣기의 철학』, 소리로 세상을 듣다

『듣기의 철학』은 낯선 책입니다. ‘듣기’에도 철학이 있다뇨. 아니, 그전에 ‘듣기’를 전면에 내세운 책을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본 적이 있나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생소함에 마음이 끌립니다. 날 때부터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왔던 듣기를 재점검하고, ‘소리’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이 책은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에서 2015년부터 진행해 온 소리 연구의 발자취를 담았습니다.

책은 음악학자와 과학기술 철학자를 비롯한 일곱 명의 저자가 쓴 열 편의 글을 네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섹션 “소리, 듣기의 권력”은 사회·문화적인 맥락 안에서 구성되는 소리와 청취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 섹션인 “소리, 공간을 채우다”는 소리풍경의 개념을 설명하며, 소리 환경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알아봅니다. 세 번째 섹션 “소리, 기술과 연결되다”에서는 코로나19로 촉발된 기술적인 듣기와 게임 음악 속 듣기, 포스트휴먼 시대의 기술적인 소리풍경의 네트워크에 관해 다룹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섹션인 “소리, 음악이 되다”는 소음과 일상의 소리가 음악이 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되돌아보고, 소리 예술이 가져올 확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내비치며 끝맺고 있습니다. 

소리와 듣기를 다각도로 살펴보는 글들이 결국 이야기하는 것은 ‘소리로 듣는 세상’에 관한 것입니다. 여태껏 세상을 보고 읽는 데에만 치중해 왔다면, 인간의 또 다른 감각인 청각을 활용해서 이 세계를 이해하자는 주장을 펼치죠. 소리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문화 속에서 구성된다는 것, 듣기 또한 사회와 문화라는 조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는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소리와 듣기의 새로운 면모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인문학적인 접근과 통찰력으로 ‘세상을 들으면서’ 책의 부제처럼 “우리는 무엇을 듣고, 듣지 않는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익숙한 출퇴근길, 낯선 소리 풍경

책을 읽으면서 난생처음 소리로 세상을 들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몇 년 전에 저는 상사의 괴롭힘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기쁨으로 반짝였던 눈은 흐려지고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집과 회사를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그 출퇴근 길, 저는 이어폰을 꽂은 채 직접 구성한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듣곤 했습니다. 세상을 차단하고 나만의 세계에 빠지는 게 좋았기 때문입니다. 회사 갈 때의 무거운 마음, 퇴근한 후 집에 돌아갈 때의 공허한 마음을 음악이 달래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건너기 위해 건널목 앞에 서 있는데 무슨 마음에서인지 귀에서 이어폰을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나와 세상을 가로막고 있던 이어폰을 뺀 순간, “쏴~~~”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에 멍하게 건너편을 바라보던 시선을 들어 보니,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초여름 해질녘 하늘을 배경으로 차들이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았던, 들리더라도 그저 소음 정도로만 생각했던 소리가 순간 다르게 들렸습니다. 장면은 순식간에 바람에 너울거리는 바다로 바뀌었고, 차 소리는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아, 나 살아있구나.’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 그렇게 소리가 나를 깨운 순간은 아직도 문득 생각날 만큼 생경하면서도 짜릿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경험한 건 무엇이었을까요? 익숙하던 풍경이 순식간에 새로운 풍경이 되는 것. 그저 눈으로 보기만 했을 때에는 알 수 없었던 생소하고 낯선 이 청취 경험을 『듣기의 철학』은 ‘소리풍경’(soundscap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잠깐 하던 일을 멈추자. 그리고 주변 소리를 들어보자(나는 독자들이 주변 소리를 들을 때까지 정말 기다릴 것이다). 아마 다양한 소리가 하나둘 들릴 것이다. 대로변을 활보하는 사람에게는 빵빵거리는 자동차 경적, 휘익 하는 바람 소리, 사람들의 휴대폰 통화 소리, 여러 가지 유형의 발걸음 소리가 들릴 것이다. 집에서 노트북으로 일하는 사람은 윙 하는 노트북 작동 소리, 두다다다 자판 두들기는 소리,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 윗집에서 아련하게 울리는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어느 가을날 가까운 곳을 산책하고 있다면,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이따금 들릴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창밖을 보는 이에게는 누군가가 밖에서 비질하며 주변을 깨끗하게 하는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르겠다.

(권현석, 『듣기의 철학』 중 ‘소리풍경으로의 여행,’ 115쪽)

음악학자 권현석은 ‘소리풍경으로의 여행’에서 일상에서 흔히 들을 법한, 하지만 좀처럼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소리들을 나열합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일 때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들의 모든 것”을 소리풍경이라고 정의하며 우리에게 주변 소리를 들을 것을 권합니다. 

‘구성되는’ 소리 풍경이 펼치는 사유의 세계

낯선 소리풍경을 감지하게 되면 우선 놀랍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풍부하고 풍요로울 수도 있구나!’ 새로 세상을 배우는 아이처럼 호기심과 경외심이 뒤섞인 채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책은 소리풍경이 개인적인 경험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합니다. 음악학자 정경영은 ‘구성된 소리, 만들어진 청취’에서 인천국제공항에서 진행된 연구를 예로 들며, 듣기가 사회·문화적인 맥락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임을 이야기합니다. 연구 참여자들은 미리 답사한 공항 내의 특정 코스를 거닐면서 소리를 듣고, 그 소리들 중 인상 깊었던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이에 많은 여성 연구 참여자들은 ‘구두 굽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라고 대답한 반면, 남성들은 단 한 명도 이와 같은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젠더라는 사회적 요인이 특정 소리를 지각하는 현상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리를 지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는 사회문화적 요인에는 젠더 외에도 계층이나 세대 등의 요인이 있습니다. 또한 소음이나 일상의 주변 소리가 음악이 되는 등 나와 세상을 구성하는 소리풍경은 다양한 양상을 띕니다. 음악학자 김경화는 ‘‘소리’예술, 악보 너머 세상의 소리를 듣다’에서 일상의 소리를 음악화한 대표적인 예로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듭니다. 총 3개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4분 33초 동안 아무것도 연주되지 않습니다. 그저 침묵으로 여겨질 수 있는 연주이지만, 사실 케이지는 작곡가의 의도가 배제된 소리가 그 자체로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연주를 통해 말하고자 했습니다. 요컨대 이어폰을 빼버리자 저를 둘러싼 날 것 그대로의 소리가 제게 음악처럼 들려왔던 것과 같은 맥락이죠.

도로를 달리는 차 소리에서 제가 느꼈던 건 자유와 해방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잔잔하게 나를 위로해 주는 음악도 좋았지만, 순간 나를 스치는 소리가 제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을지도요. 조직화된 소리로서의 음악이든, 주변부의 소리이든 소리는 사람의 정감적 부담을 덜어줍니다. 소리는 사람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은 이에 조응하며 자신만의 소리풍경을 만들어가죠. 처음으로 세상의 소리를 듣고 나만의 새로운 소리풍경을 만든 날, 저는 나답게 살고 싶다는 제 마음속 소리를 들었습니다.

낯선 세계를 ‘듣기’

내 선택과는 상관없이 인생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나만의 소리풍경을 만드는 일뿐이었습니다. 회사에서 보고 듣는 건 제 힘으로 통제할 수 없었고, 제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건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이었습니다. 음악의 선율, 그 선율을 타고 흐르는 가사에 마음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더 큰 소리풍경이 있다는 건 이어폰을 빼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일상에 존재하는 소리 또한 나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낯선 소리를 기꺼이 듣고 받아들였을 때 나의 세계는 더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요.

지극히 개인적인 제 경험에도 소리와 청취에 관한 사회문화적인 맥락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정해진 장소에서 라디오나 턴테이블 등으로 음악을 듣기보다는 이동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 건, 이동식 청취 기기가 익숙한 세대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일 것입니다. 플레이리스트에 구성된 음악 또한 한국에 사는 30대 여성 직장인의 선호가 스며들어 있었겠죠. 이처럼 개인을 넘어 사회 문화적인 맥락에서 소리풍경을 바라보는 경험 또한 ‘나’라는 세계가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카페에 앉아 『듣기의 철학』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카페에서는 음악이 줄곧 흘러나왔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도 백색소음처럼 들려왔습니다. 책에 예시로 소개된 음악들을 하나씩 들어보기도 하고, 창밖을 바라보며 들려오는 빗소리에 주의를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소리와 듣기에 관한 이야기를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동시에 나를 둘러싼 세상을 들으니 나라는 세계가 완전해지고 풍요로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야 왜 비 오던 새벽에 잠에 들지 않으려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 텅 빈 새벽 속 나를 깨우던 소리로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까맣게 내리는 빗속에서 들었던 생경한 세계의 모습이 책을 읽은 후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그렇게 낯섦에 다가가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봅니다, 아니 듣습니다. 

글 | 조서연

일상의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순간을 글로 붙잡습니다.

『듣기의 철학: 우리는 무엇을 듣고, 듣지 않는가』 

“세상은 읽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하는 것이다.”
_자크 아탈리

눈을 감고 귀를 열면 들리는 것들
청취를 통해 사회를 감각하는 청각적 사유의 확장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로서의 ‘소리’에 주목하다

‘소리연구’에서는 모든 소리의 의미가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구성된다’고 믿는다. 음악이나 언어 같이 특수한 소리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가 사회ㆍ문화의 맥락 안에서 “발생하고 소통되며 수용된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다루는 ‘소리’는 단순한 청각 자극이 아닌,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감각으로 정의된다. (…중략) _곰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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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_VIEW 2025.10.16.
『듣기의 철학: 우리는 무엇을 듣고, 듣지 않는가』  서평 특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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