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과 클레멘스 토마스의 대화
작곡가 겸 공연예술 프로듀서, 작곡가 겸 큐레이터
일시: 2026년 5월 9일 금요일 13시
장소: 음악공간 중력장
지난 5월 4주 동안 한국에 머물렀습니다. 이 글은 그때 만난 작곡가이자 공연예술 프로듀서 이용석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그는 2022년 음악공간 ‘중력장’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 무르는 동안 독일 음악잡지 《MusikTexte》에 실릴 음악학자 박수인과의 인터뷰를 위해 이 공간을 찾았어요. 박수인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녹음기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이용석이 ‘중력장’으로 들어왔습니다. 가볍게 시작된 그와의 대화는 어느새 오프스페이스와 작곡가의 역할, 현대음악의 미래에 관한 토론으로 이어졌어요. 다소 즉흥적으로 길어진 토론이었지만, 우리는 이 대화를 ‘씨샵레터’에 싣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당시 녹음된 내용을 다시 들어보고, 몇 가지 후속 질문과 대답을 덧붙여 조금 다듬었습니다.
서울의 동시대 현대음악은 어디에 있을까
토마스 지난 2주 동안 여러 미술 공간과 갤러리를 다녀봤어요. 시각예술 쪽에서는 서울에도 꽤 많은 오프스페이스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립 미술관 같은 곳들도 있고요. 방금 음악공간 ‘중력장’이 서울 현대음악계에서는 꽤 독특한 위치에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음악계와 미술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두 영역 사이에 접점도 있나요?
이용석 사실 접점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노이즈 음악이나 퍼포먼스 아트, 혹은 영상과 결합한 전자음향음악처럼 미디어아트에 가까운 작업들은 있죠. 하지만 현대음악은…… 글쎄요. 미술계 큐레이터들이 현대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토마스 가르쳐주셔야겠네요!
이용석 그래야 할까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현대음악계의 가장 큰 문제가 ‘동시대성’에 대한 감각이에요. 21세기 현재 시점에서,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이 동시대성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20년 동안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온 질문이 있어요. ‘나에게 서울의 동시대 음악은 무엇인가?’ 보통 한국에서 클래식 현대음악을 전공하면, 대학 졸업 이후독일이나 미국, 프랑스 같은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작곡가들이 아주 많아요. 그리고 돌아와서는 그냥…
토마스 …해외에서 배웠던 것, 하던 것을 그대로 하는 건가요?
이용석 네. 독일식 현대음악이나 프랑스식 현대음악처럼요. 그 이후에 서울에 돌아오면, 그 양식들을 그대로 유지하곤 합니다. 그래서 서울의 동시대성을 반영한 동시대음악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아직까지도 생기고 있는 중이고요.


토마스 굉장히 중요한 질문인 것 같아요. 저는 얼마 전에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공연 ‘한양현대음악제 2026’에 갔는데, 거기서 제 예전 스승인 요하네스 쇨호른(Johannes Schöllhorn)의 음악을 들었어요. 프라이부르크에서 저를 가르쳤던 선생님이죠. 11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와서 제 선생님의 음악을 다시 듣게 된 셈이에요. 동시에 그 음악제에서는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도 연주되었어요. 젊은 세대를 함께 소개하고 있었죠.
그런데 다른 몇몇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1990년대에 유럽에서 공부했다면 여전히 1990년대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종의 타임캡슐 같은 거죠. 어떤 학문적 버블 안에서는 아방가르드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방금 말씀하신 질문이 정말 흥미롭게 느껴져요. 본인 나름의 답을 찾으셨나요? 서울의 음악이란 무엇일까요? 서울의 동시대성이란 무엇일까요?
이용석 아까 미술계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제 인상으로는 미술계 큐레이터들은 동시대성에 민감해요. 늘 그것을 반영하려고 하죠. 그런데 현대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그 정도의 동시대성을 반영하려는 창작자와 기획자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현대음악의 ‘동시대성’ 자체가 조금 뒤처져 있는 거죠.
단순히 2026년에 작품을 만든다고 그것들이 동시대성을 확보할 수 있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양식적으로는 과거일지라도 그것이 동시대의 맥락 안에서 새롭게 보일수도 있고, 아방가르드 음악을 표방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의 실험성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측면에서 동시대성에 대한 고민 자체가 미술계에 비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 보니 미술계 큐레이터들이 새로운 작곡가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부족하기도 합니다. 애초에 분야가 다르기도 하고요.
오히려 젊은 세대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 그들은 저나 윗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동시대성이라는 질문에 접근합니다. 이 문제를 훨씬 더 의식하고 있고요. 그리고 저 역시 젊은 세대와 어느 정도 공유하는 감각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전통과 대중문화, 일상이 뒤섞여 있고 거기에 국제적인 교류까지 더해지면서, 한국과 한국의 음악이 세계 어느 나라와도 상당히 다른 모습이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 동시대성에 대한 탐구는 대학이나 학문 제도 안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교 바깥에서 시작되는 동시대 음악
이용석 이전의 음악 문화가 그래왔고, 지금의 ‘동시대’ 음악 문화들이 그렇듯 문화의 발생은 제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이루어지는 현장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대를 반영한다든지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모색하는 일은 결국 현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함께 시도할 때 비로소 가능하고요.
제도 안에서는 어떤 문화 현상이 나타나기에 앞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힘이 사라진 것 같아요. 언젠가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아 이 공간이 문을 닫게 되더라도, 혹은 예전처럼 오케스트라나 실내악 단체들이 다시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는 문화가 생겨난다고 하더라도, 우선은 학교 안보다 밖에서 음악이 태어나야 그것이 생명력을 얻고 지속될 수 있겠죠.

토마스 그래서 이곳을 오프스페이스로 만든 건가요? 기존과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한 대안적인 공간으로요?
이용석 맞습니다. 학교에 속해 있을 때에는 ‘학교 안에서 어떤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결국 학교 밖에서 새로운 음악들을 작곡하고 새로운 장르들을 만들어 내야 그것이 서울만의 고유한 동시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래서 이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각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시도를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 스스로부터 느꼈기 때문에 만들게 된 것도 있고요.
여기서는 음악가들이 피아노 내부에 어떤 재료든 넣어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연주할 수도 있어요. 공연장으로 공간을 대관할 수도 있고요. 제가 직접 공연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아티스트를 섭외하기도 합니다. 어떤 그룹이나 앙상블은 이곳을 연습실로 사용하고요. 제 작업실도 여기 있어서 저 역시 이곳에서 작곡합니다
작곡가에서 동시대 예술가로
토마스 그렇다면 음악공간 ‘중력장’처럼 작고 유연한 구조가 음악을 만들고, 보여주고, 경험하는 방식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오나요? 그런 구조가 음악 자체나 미학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이용석 물론 아직까지는, 동시대 음악이 만들어져야 하는 큰 철학적 담론까지 건드리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런 건 한 세대가 지나는 기간, 이를테면 3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또 아직까지 ‘작곡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작은 공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두를 설득할 수 있을 만한 관점을 내놓지는 못하는 것도 같아요.

다만 끊임없이 작곡가들에게도 연주를 하게끔 요구하고, 연주자들에게도 창작을 해보도록 권유하는 공간임은 틀림없어요. 연주자-작곡가 모델을 제시해서 양쪽 그룹에게 조금 더 창의적인 시도가 가능한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거죠
저는 동시대 문화에 있어서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싱어송라이터’라든지 ‘디제이’라든지, 어떤 문화적인 토대가 되는 가장 작은 단위가 결국 창작과 퍼포먼스를 동시에 하는 그룹이기 때문이에요. K-POP과 같이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단위가 되어야만 창작자와 퍼포머가 분리되는 상황인데, 이것은 문화라기보다는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문화가 되는 지점은 사실상 팬덤들이 자체적으로 꾸려나가는 문화이고, 팝 산업은 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거겠지요.
거대 자본이 흘러갔던 20세기의 클래식계도 비슷한 양상이었겠지만, 21세기의 예술음악은 그러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럴수록 20세기의 창작자 모델로부터 벗어나 동시대의 예술가 모델로 옮겨올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럴수록 더 소규모 공간에서의 실험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토마스 공연 기획자이면서 동시에 작곡가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입장에서 ‘저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대음악은 여전히 저자성이라는 개념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니까요.
이용석 저는 작곡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계속 주장해요. 우선 경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돈을 벌기도 어렵고, 위촉을 받기도 어렵고, 더 넓은 청중에게 다가가기도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미학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어떻게 작업하고, 어떻게 음악을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죠.
저는 작곡가들이 공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과 협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가와 연주자는 물론이고 조명 디자이너 같은 사람들과도요. 공연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단지 ‘음악’만이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작곡가 역시 관객의 관점을 좀 더 생각하고, 관객에게 인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과 협업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도 여러 다른 형식들을 시도하고 있어요. 물론 전통적인 작곡가의 역할, 혹은 작곡가라는 정체성 자체를 바꾸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가장 재빠르고, 괴상하고, 특이한


토마스 처음에 “서울의 동시대 음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요. 음악공간 ‘중력장’을 운영하고 젊은 세대와 함께 작업하면서, 이제는 그 답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느끼시나요? 대학 밖 ‘중력장’과 같은 오프스페이스에서는 지금 무엇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다고 보세요?
이용석 서울의 동시대 음악은 다양성이 가장 큰 주축입니다. 인구가 많고 큰 도시인 만큼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고, 그만큼 하나의 철학적 사고나 담론으로 뭉칠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요. 한 가지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그만큼 그 관객을 확보하기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서울 사람들만큼 새로운 뉴스와 이벤트, 그리고 경제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집단이 또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늘 쫓기고, 재촉당하고, 여유 없는 삶을 사는 서울 사람들에게 있어 동시대성은 유동성 그 자체입니다.
다만 예술음악으로서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서울의 현대음악 씬은, 그만큼 더 재미난 것들을 많이 만들어 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어쩌면 전 세계에 산재된 음악적 특징들을 조각내고 버무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서울의 동시대 음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재빠르고, 괴상하고, 특이한 음악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가장 대중적이게 풀어낼 수 있는 곳이 서울의 동시대 음악 씬이길 바랍니다.
이용석 @_yongsoklee @musicspacegf
작곡가, 음악감독, 공연예술 프로듀서, 리서처, 공간 운영자 등 다양한 포지션으로 동시대 공연예술 현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 전통악기와 서양 전통악기를 위한 음악부터 가장 최신의 음악 양식까지 두루 탐닉한다. 2017년부터 현대음악 팟캐스트 『신음악의 다잉메세지』를 프로듀싱해왔으며, 2022년부터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음악공간 중력장’을 운영하며 동시대 음악이 지속적으로 발표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가고 있다. 2025년부터는 ‘옵/신’과 함께 경계가 모호한 예술들을 탐구하고 있다. 2025년 기획 및 작곡으로 참여한 《건축무한미분음계》에서는 미분음과 이상(李箱)의 시를 재료로 국악, 서양음악, 전자음악이 얽힌 공연을 실험하였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클레멘스 K. 토마스 Clemens K. Thomas @clemenskthomas
클레멘스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요하네스 셸호른(Johannes Schöllhorn)과 코르넬리우스 슈베어(Cornelius Schwehr)에게 작곡을 공부했다. ‘귀여운 오페라'(cute opera)에 관한 예술 연구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앙상블 리셰르셰의 예술 감독을 역임, 현재는 프리랜서 큐레이터로서 앙상블 레조난츠(Ensemble Resonanz), 괴팅겐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함께 활동한다.
101호_VIEW 2026.10.15.
작곡가 겸 공연예술 프로듀서, 작곡가 겸 큐레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