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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샵레터, 계희승, 음악학, 서평
우리는 음악을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며 살아가지만, 정작 ‘음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멈칫하게 됩니다. 어떤 이에게 음악은 베토벤과 브람스의 고결한 악보 속에 봉인된 예술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아이돌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소비되는 감각적인 데이터입니다. 니콜라스 쿡(Nicholas Cook)의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Music: A Very Short Introduction)은 바로 이 지점, 즉 우리가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의 틀을 깨뜨리는 데서 시작합니다. 1998년 초판(한국어판 2016년)이 발행된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마침내 등장한 이 전면 개정판(한국어판 2025년)은 단순히 낡은 정보를 수정·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현대 음악 생태계의 지각변동을 반영한 재구성의 결과물입니다.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 같은 기념비적인 책이 이 정도의 시차를 두고 개정되어 나오면 가장 먼저 시선이 닿는 곳은 ‘본문’이 아니라 ‘목차’입니다. 목차는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저자가 대상을 파악하고 구조화하는 논리의 설계도이자, 그 시대의 학문적 패러다임이 응축된 지적 지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개정된 책의 경우, 초판과 개정판의 목차를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학문적 세계관이 어떻게 이동했는지,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니콜라스 쿡의 개정판은 이러한 비평적 읽기의 훌륭한 교본이 됩니다. 초판과 개정판의 목차를 나란히 놓고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됩니다. 초판은 「음악의 가치」, 「베토벤으로 돌아가기」, 「재현의 문제」, 「음악과 젠더」 등 7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말하자면 기존 음악학의 권위에 도전하며 특정 ‘대상(예: 베토벤)’이나 구체적인 ‘쟁점(예: 젠더, 재현)’을 해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반면, 개정판은 「시간의 예술」, 「음악으로 생각하기」, 「과거의 현존」, 「음악 2.0」, 「지구촌 시대의 음악」이라는 5개의 거대한 주제로 통합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음악학의 관심사가 개별적인 ‘작품’이나 ‘쟁점’의 나열에서, 보다 통합적이고 거시적인 ‘현상’과 ‘사유’로 이동했음을 보여줍니다. 초판에서 별도의 장으로 다루어졌던 ‘젠더’나 ‘학계’의 문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모든 장에 스며들어 음악을 이해하는 기본 전제가 되었습니다. 쿡은 이제 음악을 조각난 주제들의 합이 아니라 시간, 사고, 역사, 기술, 세계화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 유기체로 파악하고 있는 듯합니다. 목차만 봐도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절감하게 됩니다.
‘상상의 박물관’에서 ‘경험의 현장’으로
이러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 논의의 중심은 고정된 ‘작품’에서 역동적인 ‘경험’과 ‘기술’로 이동했습니다. 쿡은 철학자 리디아 괴어(Lydia Goehr)가 『음악 작품의 상상의 박물관』(The Imaginary Museum of Musical Works, 1992)에서 비판했던 그 ‘박물관’, 요컨대 음악을 영원불변한 텍스트로 박제하려는 태도에서 과감히 걸어 나옵니다. 과거의 음악학이 음악을 박물관의 전시품처럼 취급했다면, 쿡은 음악이 실제로 연주되고, 들리고, 소비되는 생생한 현장에 주목합니다. 그는 음악을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퍼포먼스’이자,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조율하는 사회적 ‘대본’으로 새롭게 정의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악보에 적힌 음표가 음악의 본질이라는 오랜 믿음은 흔들리게 됩니다. 악보는 요리책의 레시피일 뿐, 실제 요리가 아닙니다. 대신 사람들이 모여서 소리를 만들고, 듣고, 반응하고, 공유하는 그 모든 수행적 과정이 곧 음악이 됩니다. 쿡 자신이 『악보를 넘어서』(Beyond the Score, 2013)에서 이론화했듯이, 연주자는 작곡가의 의도를 재현하는 하수인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주체이며, 청중 역시 수동적인 수신자가 아니라 음악적 의미를 완성하는 참여자가 됩니다. 이는 우리가 음악을 대할 때 ‘이 곡은 형식이 어떠한가?’라는 미학적 질문에서 벗어나 ‘우리는 이 음악을 통해 무엇을 함께하고 있는가?’라는 관계론적 질문을 던져야 함을 시사합니다.
알고리즘이 설계하는 청취의 미래
개정판에 새롭게 추가된 제4장 「음악 2.0」은 이러한 관점의 전환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초판이 나온 1998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스포티파이, 유튜브, 스마트폰은 오늘날 음악의 생태계를 뿌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쿡은 디지털 기술을 음악을 전달하는 단순한 중립적 도구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마크 카츠(Mark Katz)가 『음악과 기술』(Music and Technology: A Very Short Introduction, 2022)에서 다룬 기술적 진보의 논의를 넘어, 디지털 기술이 우리가 음악을 인지하고 향유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음을 포착합니다.
이제 음악은 정적인 ‘청취’의 대상을 넘어 소셜 미디어상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재료’가 되었으며, 시각 매체와 결합된 멀티미디어적 ‘사건’으로 그 범위를 확장했습니다. 과거의 청중이 선별되어 박제된 음반을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데 그쳤다면,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리믹스와 매시업, 챌린지 영상 등을 통해 음악의 구조에 직접 개입하고 이를 변형하며 새로운 맥락을 창출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음악의 존재 방식이 완결된 형태의 ‘예술 작품’이라는 숭고한 틀에서 벗어나, 언제든 재가공 가능한 ‘유동적 디지털 데이터’이자 일상의 수행적 실천으로 옮겨갔음을 상징합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플랫폼 권력’에 대한 비판적 통찰입니다. 미디어 학자 로버트 프레이(Robert Prey)가 지적했듯, 우리는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음악을 고른다고 믿지만, 실상은 데이터 기반의 알고리즘이 우리의 청취 경험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들리지만, 역설적으로 더 빠르게 소비되고 휘발됩니다. 스트리밍 시대에 우리는 음악을 소유하는 대신 단지 잠시 접속할 뿐입니다. 쿡은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며 음악의 가치 판단 기준이 ‘예술성’에서 ‘주목도’와 ‘데이터’로 옮겨가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K-Pop, 변방에서 중심으로

제5장 「지구촌 시대의 음악」에서 저자는 시선을 전 세계로 확장합니다. 쿡은 음악이 더 이상 서구의 전유물이 아니며, 유튜브와 SNS를 통해 전 세계가 공유하는 시각적이고 참여적인 경험이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진달용(Dal Yong Jin)이나 존 리(John Lie)가 분석한 K-Pop 팬덤의 역동성, 즉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콘텐츠의 확산과 재창조를 주도하는 주체로 진화하는 현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음악이 ‘듣는 대상’에서 ‘함께 수행하는 행위’로 변모했다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 장에서 쿡은 조지나 본(Georgina Born)과 데이비드 헤즈먼드핼시(David Hesmondhalgh)가 탐구했던 서구 음악과 타자(Others) 사이의 위계를 해체하며, 음악이 인류를 하나로 묶는 보편적 언어라는 낭만적인 환상을 걷어냅니다. 오히려 음악이 식민주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차별의 도구가 되었으며, 오늘날의 세계화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문화적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추적합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음악이 단순한 소리의 유희를 넘어, 정체성과 권력이 치열하게 충돌하는 현장이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다시금 각인시킵니다.
악보 너머의 세상을 읽는 태도
이제 이 책이 던지는 의미를 보다 넓은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 개정판이 인상적인 이유는, 이 책이 단순히 음악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음악학이라는 학문이 오늘날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까지 함께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쿡이 제안하는 것은 특정 이론이나 화성 분석 같은 방법론이 아닙니다. 그는 음악을 둘러싼 사회, 문화, 기술적 맥락을 통합적으로 사유하는 비판적 ‘태도’를 제안합니다.

이번 개정판에서 음악은 더 이상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예술’로 보호되지 않습니다. 디지털 플랫폼과 알고리즘, 글로벌 유통 구조, 젠더와 권력, 퍼포먼스와 신체성은 모두 음악의 의미를 형성하는 핵심 조건으로 다루어집니다. 이는 음악을 사회로부터 분리하여 음표 자체의 논리에만 천착해 온 전통적인 음악학의 관습에서 한발 물러선 선택인 동시에, 오늘날 음악학이 피할 수 없는 윤리적 전환이기도 합니다. 음악을 ‘분석’한다는 것은 이제 악보의 구조를 파헤치는 일을 넘어, 음악이 작동하는 세상의 구조를 파헤치는 일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선택은 필연적으로 긴장을 동반합니다. 코피 아가우(V. Kofi Agawu)가 ‘신음악학’ 체제 하에서의 분석을 고민했던 것처럼, 형식 분석이나 음향 구조에서 오는 음악학적 쾌감을 기대하는, 혹은 음악의 순수성을 믿고 싶은 독자에게는 다소 아쉬움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애초에 분석 기법을 가르치려는 기술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왜’ 음악을 분석해야 하며, 그 분석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되물으며 우리의 사유를 확장하는 책입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분석 이전의 질문, 혹은 진정한 의미의 분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유의 조건을 다루는 메타-음악학적 안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탁월한 저자, 믿고 읽는 번역
이러한 논쟁적 전환을 설득력 있게 풀어낼 수 있는 학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로저 파커(Roger Parker)는 이 책을 두고 음악학계에서 쿡보다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평했습니다. 물론 파커의 이러한 찬사는 곰출판에서 나온 음악학자 정경영의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생각합니다』를 미처 읽어 보지 못해서 나온 말이겠지만, 니콜라스 쿡이 대중과 학계를 잇는 소통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음악학자로서 부러움 섞인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 책이 한국 독자들에게 온전한 모습으로 도착할 수 있게 해 준 이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초판에 이어 개정판의 번역을 맡은 장호연은 음악 서적 분야에서 믿고 읽는 신뢰할 수 있는 번역가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개정판이 대대적으로 바뀌긴 했으나 초판의 논의가 유지된 구간들도 존재하는데, 번역가는 이를 재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문장을 처음부터 다시 조율했고, 덕분에 이미 훌륭한 초판보다 훨씬 매끄럽고 명징한 우리말의 리듬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돈 되는 책’만 살아남는 척박한 출판 현실 속에서 묵묵히 ‘인문학으로서 음악학’의 자리를 지켜준 곰출판의 뚝심 또한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결국 이 책은 음악에 대한 백과사전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감각하고 이해하는 철학적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책장을 덮을 때쯤, 스마트폰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수천 곡의 노래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거대한 사회적 문법과 기술적 욕망이 얽힌 입체적인 풍경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198쪽이라는 분량이 무색하게, 이 책이 열어주는 사유의 공간은 무한히 넓습니다. 음악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바로 이 책에서 시작하세요. 물론 반드시 ‘개정판’이어야 합니다.

94호_VIEW 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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