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로 시작해, 이어폰으로 버티고, 알림음으로 끝나는 하루. 요즘 사람들은 눈보다 귀가 더 바쁩니다. 출근길 지하철의 안내 방송, 카페에서의 유리잔 소리, 이어폰 속 음악, 밤마다 틀어 놓는 ASMR까지. 눈으로 스쳐 가는 장면만큼이나, 귀에 닿는 소리 또한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소리들은 단순히 ‘배경’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목소리는 힘을 갖고, 어떤 목소리는 침묵을 강요받습니다. 또 어떤 소리는 나만의 방을 만들고, 어떤 소리는 도시 전체의 정체성이 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소리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또 어떤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죠. 『듣기의 철학』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세상은 읽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한다”라는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1943~)의 말처럼, 이 책은 소리를 사회와 인간 존재에 대해 새롭게 사유하는 통로로 삼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같은 소리, 다른 의미

한 공간에 있어도 서로 다른 소리를 듣는 경험, 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자들은 우리가 듣는 소리가 결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듣는다는 것’은 관심과 문화, 관습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아파트의 소음 민원을 떠올려 보세요. 아이의 피아노 연습 소리가 어떤 이에게는 재능 있는 아이의 성장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참을 수 없는 소음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소리라도 누군가에게는 ‘음악(音樂)’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음’이 되는 것이지요. 소리는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구성물이라는 점을 책은 강조합니다.
이 책은 소리를 권력, 공간, 기술, 음악이라는 네 가지의 맥락에서 탐구합니다. 그중 ‘듣기의 권력’을 다루는 장에서 논의되는 ‘목소리’는, 청취가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르게 구성된다는 사실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음악학자 김경화는 목소리를 ‘발언권’으로 해석하며, 여성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높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되거나, 부랑자의 가라오케가 ‘공공장소의 소음’으로 규정되는 순간, 소리는 단순한 물리적 파동을 넘어 사회적 권력의 작동을 드러내는 장치로 변한다고 설명합니다. 반대로 정치인의 연설이나 아나운서의 발성은 ‘권위를 지닌 목소리’로 받아들이는 사회현상을 지적하죠. 음악 감상과 같은 사적인 청취 행위조차 사회적 장(場)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음악학자 정경영은 ‘노래를 잘 부른다’는 기준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닌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부모 세대가 박자·음정·성량과 같은 기술적 측면을 중시했다면, 오늘의 세대는 이른바 ‘쩌는 음색’, 즉 개성 있는 톤을 더 높게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ASMR을 음악처럼 소비하는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제시합니다. 마이크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를 즐기는 청취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듣기의 기술’이라는 것이지요. 저자의 설명은 청취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변했다’는 점에 방점을 둡니다. 그러나 더 적합한 표현은 ‘다양화되었다’일 것입니다. 기존의 기준이 소멸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과 취향이 층위를 더했기 때문이니까요. 따라서 현시대에 주목해야 할 가치는 청취 방식의 확장, 곧 ‘청취의 다양성’입니다.
소리를 고른다는 건 삶을 고른다는 것
청취의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조건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 철학자 이상욱은 ‘인문학으로서의 소리연구’를 설명하며, 산업화된 도시일수록 소리 풍경이 획일화된다고 경고합니다. 체인점 카페마다 흘러나오는 동일한 음악, 대중교통의 반복적인 안내 방송은 어디서나 같은 방식으로 재현되는 도시의 배경음이 되었지요. 저자는 이처럼 균질화된 환경 속에서 지역 고유의 소리, 곧 ‘나머지 소리’가 주변화된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소리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한 보존을 넘어, 우리가 어떤 환경을 선택하고 살아갈 것인지, 즉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짓는 방식과 직결됩니다. 저자들이 소개하는 ‘소리풍경(soundscape)’ 개념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음악인류학자 권현석은 소리풍경을 “귀를 기울일 때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들의 모든 것”이라 정의합니다. 이는 단순히 소리의 집합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소리를 중심에 두고 어떤 소리를 배경으로 두는지, 다시 말해 세계를 듣는 ‘감각의 질서’를 내포한 개념인 것이지요.

오늘날의 청취는 기술을 매개로 더욱 능동적으로 조정되고 선택됩니다. ‘이어폰’을 통해 외부의 소리를 차단한 채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에 몰입하거나, 반대로 음원화된 환경에 대한 실증을 느껴 자연의 소리와 현장의 실황만 찾는 것 모두가 소리풍경을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스마트폰 알림음, 전자제품의 경고음, AI 스피커의 응답 역시 현대의 기술이 만들어낸 소리환경의 자원입니다. 결국 “무엇을 들을 것인가”라는 물음은 곧 “어떤 소리 환경에서 살 것인가”라는 물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맥락에서 미학자이자 음악학자 정혜윤은 ‘소리니치(sonic niche)’라는 개념을 통해 흥미로운 확장을 보여줍니다. 본래 니치는 생태학에서 생명체가 차지하는 서식지를 뜻하는데, 인간 역시 소리를 통해 자신만의 서식지를 짓는다는 개념입니다. 집중을 위해 음악을 틀거나, 특정 소리를 차단해 휴식을 얻는 행위는 모두 각자의 소리니치를 건축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소리는 더 이상 수동적인 배경이 아니라, 우리가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구성하는 삶의 자원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경험하던 청취 행위를 ‘소리풍경’, ‘소리환경’, ‘소리니치’와 같은 개념 언어로 ‘체계화’하는 것. 체계화의 힘은 낯익은 현상을 다른 차원으로 사유하게 만듭니다. ‘당연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는 일상적 청취가 사실은 ‘어떤 존재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고, 존재 방식을 다시 성찰하게 합니다. 따라서 소리에 대한 사유는 음향학적 연구를 넘어, 인간의 존재와 관계 맺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철학적 탐구이며, 이는 곧 동시대 음악의 필요성과 존재 이유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어집니다.
오늘의 소리, 내일의 음악이 되다
현대음악 연주회에 가면 종종 이런 반응을 듣습니다. “저게 음악이 맞아?” 아마 한 번쯤은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낯선 음향과 불협화음이 몰아칠 때, 관습적 기대에 길들여진 귀는 당혹감을 먼저 느끼기 마련입니다. 『듣기의 철학』 4장에서는 바로 이러한 지점을 파고듭니다. 저자들은 말러의 불협화음, 바레즈의 ‘소리 해방’, 케이지의 《4분 33초》를 전통적인 청취 규범을 전복한 사례로 들며, 우리가 ‘소음’이라 치부하던 것들이 음악의 재료로 편입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소음은 배제된 타자가 아니라, 음악을 확장하는 동력이 되었다고 덧붙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에는 언제나 최소한의 질서, 곧 ‘조직’이 필요합니다. 작곡을 뜻하는 영어 Composition이 ‘구성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낯선 음향이든 익숙한 선율이든, 하나의 질서 속에 배치될 때 비로소 음악은 성립합니다. ‘음악’과 ‘소리’가 구별되는 지점이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시대 음악의 역할은 명확해집니다. 기존에 음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비음악적인 소리를 새로운 질서 안으로 편입시켜, 우리의 삶과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드는 훈련으로 기능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동시대의 소리를 담는 것. 그것이 동시대 음악의 역할이자, 재정의입니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취향을 묻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갈 삶의 조건, 그리고 타자와 맺는 관계 방식을 되묻는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기준이 전부가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새로운 소리를 음악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환경을 구성하는 소리라면, 그것은 이미 음악의 재료가 될 수 있다고 답하고 싶습니다.
소리연구는 곧 ‘소리 너머의 사회와 문화’를 ‘듣는’ 작업입니다. 이 책은 다학제적 집단 연구로서 연구자들의 서로 다른 접근 과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세상은 들어야 한다’라는 하나의 목표로 수렴합니다. 익숙한 소리를 낯설게, 낯선 소리를 새롭게 듣는 일. 『듣기의 철학』은 바로 이 변화를 위한 가장 친절한 안내서입니다. 이 책의 핵심을 잘 함축하는 문장을 빌려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음악을 넘어서는 주변의 소리는 우리가 몸담은 이곳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런 점에서 소리풍경 연구는 현대 시민이 사는 곳, 아니 살아야 하는 곳에 대한 연구로 볼 수 있다. 소리풍경 연구는 대안적인 음악학의 첫걸음이다.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소리풍경을 들으며 더 나은 삶을 모색하는 소풍길(소리풍경의 길)이다.
권현석, 『듣기의 철학』 중 ‘소리풍경으로의 여행,’ 136쪽
나를 알고 싶다면 들어야 하고, 세상을 알고 싶다면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시대를 알고 싶다면 현대음악을 들어야 합니다. 내일, 당신이 들을 이어리스트(Ear-list)는 무엇입니까?
글 | 김태현
작곡가입니다.
예술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보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씨샵레터 X 곰출판’이 진행한 서평 필진 공모를 통해 선발된 당선자의 글입니다.
『듣기의 철학: 우리는 무엇을 듣고, 듣지 않는가』

“세상은 읽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하는 것이다.”
_자크 아탈리
눈을 감고 귀를 열면 들리는 것들
청취를 통해 사회를 감각하는 청각적 사유의 확장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로서의 ‘소리’에 주목하다
‘소리연구’에서는 모든 소리의 의미가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구성된다’고 믿는다. 음악이나 언어 같이 특수한 소리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가 사회ㆍ문화의 맥락 안에서 “발생하고 소통되며 수용된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다루는 ‘소리’는 단순한 청각 자극이 아닌,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감각으로 정의된다. (…중략) _곰출판

90호_VIEW 2025.10.16.
『듣기의 철학: 우리는 무엇을 듣고, 듣지 않는가』 서평 특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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