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연구원

기술과 매체의 발전은 세상을 바꿉니다. 때로는 인간을 바꾸기도 하지요. 문화도 바꿀 수 있습니다. 대중음악을 예로 들어 볼까요? 발전된 녹음 기술은 소리를 ‘충실히’ 기록하고, 새로운 편집 기술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완벽함’을 구현합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기술의 발전은 청취의 방식을 바꾸고 심지어 음악의 정의를 바꿉니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 1911–1980)에 따르면 매체는 우리의 의식을 구조화합니다. 쉽게 말하면 매체가 변하면 내용도 변한다는 것. 무슨 말인지 보겠습니다.
시간
어느 조사 기관의 발표를 보면 대중음악의 길이는 매체의 변화와 함께 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중음악의 평균적인 길이는 194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조금씩 길어졌는데, 1940년대부터 60년대 말까지의 평균 길이는 대략 180초(3분)를 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1960년대 전후 평균 길이가 150초(2분 30초)로 줄어듭니다. 1970년대부터 80년대 말까지 다시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해 250초(4분 10초)를 기록하고 이후 2000년까지 240초(4분) 내외를 유지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19세기 후반, 사람들이 점점 더 긴 음악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단순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이러한 변화에는 매체의 발전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람들이 음악을 듣기 위해 어떤 매체를 주로 사용했는지 보면 됩니다. 먼저 1950년대까지 주요 매체는 78rpm이었습니다. 대략 4분가량의 음악을 담을 수 있었지요. 1940년대 말 출시된 45rpm도 담을 수 있는 음악의 길이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로 한 곡이 수록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최근(아무리 길게 잡아도 2000년대 이후)에서야 ‘싱글’ 문화가 자리 잡았고 그마저도 ‘디지털 싱글’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매체의 특성과는 별 관계없는 상술(혹은 상징)에 지나지 않지만 음반 시장이 먼저 열린 해외에서 ‘싱글’은 문자 그대로 ‘한 곡’을 의미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출시된 33⅓rpm(LP)이 더 많은 음악을 담을 수 있게 되면서 ‘앨범’도 탄생했지요.

1960년대 탄생한 카세트테이프는 1970년대 들어 LP를 빠르게 대체하기 시작합니다. 훨씬 많은 음악을 담을 수 있기도 했지만 아담한 사이즈 덕분에 1979년 출시된 워크맨이 있으면 이동하며 음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조사기관의 발표를 보면 2000년대 이후 대중음악의 길이가 점점 짧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빌보드 Top 100을 대상을 조사한 것이니까 ‘좋은 음악’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중에게 ‘인기 있는 음악’의 정의가 바뀌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 조사 결과가 사실이라면 2000년대 이후 대중음악의 길이는 심각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짧아집니다. 2000년 전후 250초(4분 10초)에서 정점을 찍은 후 2018년까지 매해 감소해 평균 길이는 다시 210초(3분 30초)까지 떨어집니다.
평균 길이가 250초에서 210초까지 40초 짧아진 것 갖고 뭐 그리 호들갑인가 싶지만 16% 감소가 결코 간과할 만한 숫자는 아닙니다. 그것도 약 20년 가까이 지속된 변화라면 하나의 경향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같은 조사 기관의 다른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같은 기간 150초가 넘지 않는 곡의 비중은 2000년 0%에서 2018년 6%까지 치솟습니다. 혹시 몰라 장르별로도 조사를 해 보았는데 R&B, 록, 힙합, 팝, 컨트리까지 장르 불문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변화입니다. 아니 대체 왜?
청취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집중력이 짧아졌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다시 한번 매체의 변화와 청취 방식을 살펴봐야 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러한 변화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되며 새로 책정된 음원료 산정 방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조회수(재생수)에 따른 음원료 지급 방식은 수익률의 관점에서 짧은 곡을 더 유리하게 만듭니다. 60분 동안 4분짜리 곡은 15회 재생되지만 3분짜리 곡은 20회 재생됩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아티스트에게 훨씬 이득이지요.
이게 ‘좋다/나쁘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기술과 매체의 발전에 따라 청취 방식도 음악도 변한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어폰/헤드폰을 착용하고 밖에서 이동하며 음악을 듣습니다. 이동하며 머무는 장소는 꽤 높은 확률로 시끄럽기 때문에 요즘은 고가의 노이즈캔슬링 장비를 착용하지요. 하지만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이 보편화되기 이전, 같은 조건에서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건 곤욕이었을 겁니다. 뉴요커의 음악 비평가 아만다 페트루식(Amanda Petrusich)은 이렇게 보편적인 청취 방식이 변하면서 ‘좋은’ 음악의 조건도 변한다고 말합니다. 뭐 이런 것이죠. 당신이 프로듀서이고 당신의 음악을 소비할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와 같은 (악)조건에서 음악을 들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 어떻게 음악을 쓰겠냐는? 페트루식이 만난 프로듀서 상당수가 실제로 이러한 청취 조건을 염두에 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어폰에 맞춰 음악을 프로듀싱한다죠. 이를테면 싸구려 이어폰으로 시끄러운 환경에서 들어도 잘 들리는 음역대에 집중한답니다. 달리 얘기하면 음악이 이어폰(매체)의 한계에 맞추어 재정의된다는 것.
취향

다시 강조하지만 그래서 이게 ‘좋다/나쁘다’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매체가 변하면 청취 방식도 음악도 변합니다. 앞서 언급한 스트리밍 서비스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추천 알고리즘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업계의 화두는 ‘개인화’, ‘맞춤화’를 위한 ‘추천’ 알고리즘 개발입니다. 이상적으로는 청취자에게 가장 유익한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게 맞겠지요. 하지만 그게 어디 그런가요. 그보다는 자사에 가장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주는 알고리즘 개발이 중요할 겁니다. 구체적으로 코드를 들여다본 적도 없고(대외비일 테니까…) 요즘은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개입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서비스마다 추천 방식은 확연히 다릅니다.
그런데 ‘추천’이 만약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아서’를 전제하는 행위라면 스트리밍 서비스가 던져주는 추천 목록을 어디까지, 그리고 언제까지 믿어야 할지 좀 고민됩니다. 고민되는 이유는 비슷한 성격의 음악을(음악만!) 계속 듣게 될 테니까. 그래서 ‘취향’이라는 게 있는 것 아닌가 싶지만 취향이 확실한 것과 자신의 취향에 갇히는 건 조금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취향이 확실하더라도 나와 취향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상이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음악만 추천하는 알고리즘이 마냥 좋지는 않습니다. 평소 같으면 듣지 않았을 법한 색다른 음악도 좀 들어야 ‘아, 세상에는 이렇게 다른 음악도 있구나’라며 나만의 방에서 잠시 나와 볼 수 있지 않겠어요?
기술과 매체의 발전은 세상을 바꿉니다. 때로는 인간을 바꾸기도 하지요. 문화도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음악’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서 그렇지 정치, 경제, 사회, 종교로 범위를 넓히면 눈앞에 갑자기 무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더 무서운 건 이게 그냥 상상이 아니라 점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우스갯소리로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하는데, 이 우스갯소리에 더 이상 웃을 수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기술과 매체의 발전이 세상과 ‘나’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좀 의식해 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내가 주체적으로 변화하는 게 아니라 기술과 매체에 의해 변화되고 있다는 생각을 요즘 가끔 하게 되는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더라고요. 혹시 비슷한 느낌을 받은 분이 있다면 이 글은 함께하자는 초대장 같은 겁니다.

51호_VIEW 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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