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연구소장
보통은 그냥 멋쩍게 웃습니다. 그 질문 뒤에 숨겨진 나머지 말을 알 것도 같거든요. “음악을 연구한다구? 맙소사, 음악은 연구하는 게 아니야! 그냥 즐기는 거라구!” 이런 말이요. 옛날에는 그 말에 발끈해서 쉽게 흥분하곤 했습니다. “왜? 뭐? 음악을 연구하는 게 어때서!” 이젠 아무렇지도 않지…는 않고, 때와 장소를 가려 가며 발끈합니다. 하지만 제법 여유가 생겨서 저 스스로를 소개할 때 이렇게 하기도 합니다. “저는 음악을 ‘연주’하지 않고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음악을 책으로 배우고 말로 하는 사람인 거죠, 하하하.” 물론 민망하게 저 혼자만 웃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그래서 오늘은 제대로 한번 말해 볼 생각입니다. 제가 대체 왜 음악을 연구하는지 말이죠.
존 덴버의 E7

빨리 말하면 음악을 연구하는 게 재밌어서, 그래서 연구합니다. 물론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음악이 주는 매혹의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다음에는 궁금해지더라구요, 나를 사로잡은 그 매혹의 원인이 말이죠. 지금도 기억합니다. 아주 어릴 때 소나티네를 치다가 어떤 화음에 사로잡혔었습니다. 그래서 그 화음을 여러 번 반복해서 쳤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어느 때쯤인가 혼자 기타를 공부한다고 팅팅대면서 존 덴버의 “country road take me home 어쩌구~”를 노래하다가 갑자기 그 화음을 다시 만났을 때, 그때의 감격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E7 코드였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결국 그 화음을 ‘도미넌트 세븐’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된 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런 경험은 끝도 없어요. 고등학교 성가대에서 부르던 ‘우리 주님의 손길 닿는 곳에’ 이런 가사의 노래가 끝부분에서 묘하게 휘어지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그 부분을 ‘플랫 식스’라고 부르면 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에는, 남 몰래 나만 오랫동안 지켜보던 이웃 여고 그 예쁜 여학생의 이름을 마침내 알게 되었을 때만큼이나 좋았습니다.
이상한 사람이라구요? 네, 뭐… 하지만 그리 따지자면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니까 말이죠. 맥주를 좋아하는 우리 연구소 연구보조원 한 사람은 맥줏집에만 가면 입이 근질거리는 모양입니다. 어느 나라 맥주는 어떻고 또 다른 나라 맥주는 이렇고, 맥주를 만드는 법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구분하고… 아니 이걸 누가 시켜서 알게 되었겠냐구요. 그저 자연스레, 관심 있으니까 알게 된 거겠죠.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내가 좋아하는 거, 그걸 더 잘 알고 싶은 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 아닐까요? BTS나 블랙핑크 멤버들에 대해서라면 이름만이 아니라 생일, 좋아하는 음식 뭐 이런 것도 알고 계시지 않나요? 제가 음악을 연구하는 게 그리 이상한가요? 제가 음악을 연구하는 이유는 그저 나를 매혹시킨 것의 이름을 알고 싶어서입니다. 그것을 더 잘 알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니까 음악이 좋아서입니다.
물음들
물론 음악을 연구하는 일은 어렵기도 합니다. 음악의 구조를 잘 살피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축적된 음악의 규칙들과 관습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규칙과 관습들이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니, 좀 귀찮기도 하죠. 어떤 작곡가의 독특한 음악적 습관을 알아내려면 아주 예민하고 섬세해야 하기도 합니다. 어떤 작품의 역사적 배경이나 환경을 이해하려면 어떨 때는 팔자에도 없는 외국어들을, 으~~ 열심히 공부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뭐 어쩌겠어요. 진짜, 진짜로 알고 싶은걸요, 음악이, 저 음악이 왜 내 마음을 두드리는지 말이죠. 그러니 이 귀찮음이나 어려움도, 널리 보면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딴 일에 방해 받지 않고 음악 연구만 하려고, 은퇴할 날만 기다릴 정도입니다.

어찌 보면 음악을 연구하는 것은 낯선 누군가를 만나는 일과도 닮아있습니다. 그렇잖아요?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소개팅, 미팅에 나가 맘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음, 무게 잡느라 물끄러미 상대방을 바라보기만 하시나요? 맘에 들면 들수록 이것저것 묻게 되잖아요? 고향이 어디냐, 무슨 고등학교를 나오셨냐, 전공은? 취미는 뭐냐? 형제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 게임도 하시냐? 혈액형, 별자리, MBTI는?
결국 음악 연구도 그런 걸 묻는 겁니다. 저 위에서 물은 수많은 물음들은 실은 두 가지 종류에요. 하나는 ‘어쩌다가 이리 되셨냐’라는 시간의 축을 따른 물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넌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이냐’라는 물음인 거죠. 음악 연구하는 사람들은 앞의 물음을 역사적 물음, 뒤의 것을 체계적 물음이라고 부릅니다… 아, 재미없어졌네요. 직업병입니다.
음악을 연구한다는 건
진짜 하려던 이야기는 이런 겁니다. 음악을 연구하는 것은 어쩌면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과 닮아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음악 연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헴!) 남을 이해하는 예민한 마음, 그를 내 맘대로, 내 좋을 대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섬세한 배려, 사소한 뉘앙스 차이를 알아채는 프로급 눈치,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알아낸 것을 잘 설명하고 설득하는 표현력까지 있어야 하니까요!


음악을 연구하는 모든 과정이 재미있지만, 저는 이 마지막 부분이 특히 재미있습니다. 음악에 대해 알게 된 것을 말이나 글로 설명하는 일이요. 때로는 마치 병원에서 의사선생님들이 하듯 멋지게 어려운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끼리는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니까요. 어떨 때는 우리 말을 잘 모르는 어린 아이들에게 말하듯, 그렇게 차근차근 비유를 들어가며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떨 때는 음악에 대한 지식을 논리적으로 정교하게 말하기 보다는 그것의 의미를 폭넓게 받아들이도록 시적 표현을 쓰기도 하죠. 이 모든 과정이 재밌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을 청자나 독자를 상상하고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선택하고 그것을 적절한 방법으로 전달하는 것 말이죠. 그러니까 음악 연구자들도 나름의 연주를 하는 셈이죠.
진짜 이유

만일 음악을 연구하는 일도 일종의 연주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 제 이야기에 동의한다면, 이제 제가 좀 더 과감히 말해도 이해해 주실 것 같네요. 음악을 왜 연구하느냐구요? 제겐 그 일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만나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애쓰고, 마침내 그 음악에 대한 어떤 깨달음을 얻고 그것에 대해 말하거나 쓰는 그 모든 과정이, 그저 재미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 도사리고 있는 떨칠 수 없는 매력을, 그저 재밌다는 말로는 충분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음악을 연구하는 일은 아름답습니다. 어떤 때는 어렵고 종종 말도 안 되는 끈기가 필요하고 또 어떤 때는 끝없는 수정과 교정을 반복하는 수고를 요구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가 모두 실로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저는 훌륭한 음악 작품을 들을 때처럼 훌륭한 음악 연구 앞에서 종종 감동을 받습니다. 작품의 배후를 끄집어내는 그 집요함과 섬세함 앞에,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그 아름다운 글쓰기와 말하기 앞에서 말입니다.
음악을 왜 연구하느냐구요? 제겐, 음악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창조적이고 음악을 듣는 것 못지않게 재미있고 음악을 연주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57호_VIEW 20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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